근대 의 문화와 미술
근대 한국 미술사에서는 다양한 사건과 인물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정치적, 사회적 흐름이 미술 활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1. 서양 문물의 유입
일제 강점기에는 서양 문화와 미술이 한국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서양 회화와 사진이 도입되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한국 미술 양식에 변화를 초래했다.
특히 일본 유학을 통해 서양 모더니즘 미술을 접한 유학생들이 귀국하면서, 이러한 새로운 양식과 사조들이 한국 미술계에 퍼지기 시작했다.
2. 모더니즘 미술의 유입
모더니즘 미술을 시작으로 인상주의, 표현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사조들이 동시에 유입되었으며, 이들 미술가들은 외형적 양식보다는 사조의 원래 의도와 심미적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3. 친일 협력과 미술 활동
일제 강점기 동안 활동한 한국 미술가들 중에는 친일 협력과 관련된 인물들도 많았다. 단광회, 결전미술전 등 친일 세력이 주최한 전시나 협회에 참여한 미술가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전후 한국 미술사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4. 주요 미술가들과 협회
조선미술전람회
조선미술가협회
서화연구회
서화협회
조선서도보국회
조선동양화가협회
조선남화연맹
남종화전
목일회
이러한 협회와 미술가들은 그들의 시대적, 정치적 배경과 연결되어 복잡한 사회적 위치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미술 활동이 정치적 사건과 밀접하게 얽혀 있어, 후세에서 그들의 역할과 행동에 대한 재평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현대의 문화와 미술
대한민국에서는 광복 이후 전통미술보다는 서양미술이, 그리고 서양미술보다는 상업미술이 더 크게 발전하였다.
이 시기의 한국 미술은 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일본의 영향력은 줄어들었고 대신 프랑스, 독일, 영국 등으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이 늘었다.
해방 이후의 모더니즘 미술은 이전의 모더니즘과 차별되는 점으로 '향토성'을 강조하는 점이 있다.
'향토성'이라는 개념은 일제 강점기 때도 중요한 주제였지만, 그 당시에는 주로 원시주의적이거나 미개한 측면을 강조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해방 이후 한국 예술가들은 '서양의 기법과 한국의 전통을 동시에 계승한다'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향토성'을 다시 정의하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들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에서 해방성을 반영하거나, 민속적인 소재를 찾아 표현하는 방식으로 향토성을 추구했는데,
예를 들어, 이중섭, 최영림, 이만익과 같은 예술가들은 한국적인 소재나 정서를 작품에 담아내었으며, 김기창, 박수근, 장리석 등은 서양 기법을 통해 한국적인 주제를 다루었다.
이후 한국 모더니즘 미술은 근대화와 한국적 정체성 사이에서 꾸준히 고민하고 조율하며 발전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양한 시도와 실험이 이루어지며, 현대 한국 미술의 다양성과 깊이가 형성되었다.
1970년대
1970년대는 한국 미술에서 중요한 전환기로, 모노크롬 회화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 시기의 한국 모더니즘 미술은 서구 미술 이론에서 중요시하는 '회화의 자율성' 개념과 맞닿아 있다.
모노크롬 회화는 회화의 본질적 가치와 가능성을 탐구하려는 목표 아래 등장했으며,
이는 1950년대부터 지속된 국전 체제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전 체제 하에서는 주로 일본의 영향을 받아 리얼리즘 미술이 주류였으나, 이에 반대하여 추상 미술 운동이 등장하게 되었고, 모노크롬 회화가 그 중 하나였다.
김환기, 박서보, 이응노 등의 화가들이 이 시기에 활동했으며, 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회화의 형식적 가능성을 탐구했다.
그러나 추상미술은 일부 부작용을 낳기도 했는데, 순수한 미술의 형식언어에만 집중하려 하자, 그 작품들은 군사정권 시대에 벌어졌던 현실 사회 문제와는 동떨어져 있는 느낌을 주었다.
대중은 이러한 추상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신 상업미술이나 대중 문화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이 시기 일부 작가들은 군사정권의 압박에 휘둘려 예술적 신념을 접고 역사화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1980년대
1980년대에는 이러한 추상 중심의 미술계에 반발하는 민중미술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민중미술은 모노크롬 회화가 고수했던 형식적 경향과 사회적 무관심에 반발했으며,
미술이 사회의 일부로서 삶의 현장에 더 가까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의 '현실과 발언'전은 민중미술이 주목받게 된 계기가 되었고, 신학철, 임옥상, 최병수 등의 작가들이 활발히 활동했다.
민중미술은 추상에서 다시 구상화로 회귀하면서 사회적 사실주의적 성향을 보였으며, 이는 일부 서구 사회적 사실주의 미술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한국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정착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한국 미술이 서구 미술의 다양한 영향을 받아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1990년대 이후
1990년대 이후 한국 미술계는 군사정권의 종료와 민주화 과정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이 시기에는 민중미술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고, 대중운동이 퇴조하면서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이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로 옮겨갔다.
이로 인해 예술가들도 거창한 사회적 주제보다는 개인적인 미적 이슈나 실질적인 인권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문화의 개방과 인터넷의 보급은 한국 미술계에 포스트모더니즘 예술 경향을 소개하게 되었고,
이 시기에는 개념미술을 시도하는 작가들이 늘어나며, 특히 김구림, 성능경, 이강소, 이승택 등의 행위예술 작가들이 이미 1980년대부터 이러한 작업을 선도해 왔다.
또한 신기술의 발전과 함께 미디어아트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는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으면서 한국 내에서도 그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생겨났다.
백남준 이후에는 박현기와 같은 작가들이 한국에서도 미디어아트를 시도하며 예술의 형태와 매체가 다양화되는 흐름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 미술은 점차 혼성예술이나 종합예술화 되는 경향이 강화되었으며,
다양한 시도와 혼성적 접근은 한국 미술의 현대성과 독창성을 강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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